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앙 안에서 두 형제, 베드로와 바오로를 기념합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교회의 기둥으로 인정하고, 로마 교구와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합니다.
이 두 사도의 역사는 이 시대의 순례자인 주님의 제자 공동체인 우리에게도 깊이 다가옵니다. 특히 그분들의 증언을 보면서 두 가지 측면, 곧 교회 공동체(comunione ecclesiale)와 신앙의 활력(vitalità della fede)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교회 공동체(comunione ecclesiale)입니다. 사실 이 대축일의 전례는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라는 하나의 운명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 순교로 그분들은 그리스도와 영원히 결합되었습니다. 제1독서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감옥에서 형 집행을 기다리는 것을 봅니다(사도 12,1-11 참조).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역시 사슬에 묶인 채, 일종의 유언처럼 자신의 피가 곧 흘려져 하느님께 바쳐질 것이라고 말합니다(2티모 4,6-8.17-18 참조). 그러므로 베드로와 바오로 둘 다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신앙 고백 안에서의 이 공동체(comunione)는 평화롭게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두 사도는 긴 여정을 거쳐 도달하는 목표로서 이 공동체를 얻었습니다. 이 여정에서 각자는 신앙을 받아들이고 사도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성령 안에서의 그분들의 형제애는 그분들이 출발했던 다양성을 지우지 않습니다. 시몬은 갈릴래아의 어부였고, 사울은 바리사이파에 속한 엄격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시몬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즉시 모든 것을 버렸고, 사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변화되기 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로 유다인들에게 설교했고, 바오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끌렸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놓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없지 않았습니다. 바오로는 “그러나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그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하였으므로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갈라 2,11)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 문제는 다시 논의될 것이고, 거기에서 두 사도는 다시 맞서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와 바오로의 역사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공동체(comunione)가 목소리와 얼굴들의 조화(armonia)이며 각자의 자유를 없애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 수호성인들은 다른 길을 걸었고, 다른 생각을 가졌으며, 때로는 복음적인 솔직함으로 맞서고 충돌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분들이 사도들의 일치(concordia apostolorum), 곧 성령 안에서 생생한 공동체(comunione), 다양성 안에서 풍요로운 조화(sintonia)를 사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했듯이, “단 하루만이 두 사도의 축일에 봉헌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였습니다. 비록 다른 날에 순교했지만, 그들은 하나였습니다”(강론 295, 7.7).
이 모든 것은 교회 공동체(comunione)의 길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성령의 충동에서 비롯되며, 다양성을 결합하고 카리스마와 은사, 직무의 다양성 안에서 일치의 다리를 놓습니다. 공동체(comunione)를 이처럼 다양성 안의 일치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은사들이 유일한 신앙 고백 안에서 연결될 때, 복음 선포에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베드로와 바오로를 보면서 이 길을 걸어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러한 형제애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것을 필요로 하고, 평신도와 사제들 사이, 사제와 주교들 사이, 주교와 교황 사이의 관계도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목 생활, 일치 대화, 그리고 교회가 세상과 맺고 싶어 하는 우정 관계도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각자가 개인적인 역사를 가지고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우도록, 우리의 다양성을 일치와 공동체(comunione), 형제애와 화해의 실험실로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또한 우리에게 신앙의 활력(vitalità della nostra fede)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제자직의 경험 안에는 습관, 의식주의, 그리고 쇄신되지 않고 현재의 도전을 파악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사목적 틀에 빠질 위험이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의 역사 안에서는 변화에 개방하려는 그분들의 의지, 사건과 만남, 공동체의 구체적인 상황에 의해 질문받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신앙 안의 형제자매들이 제기하는 문제와 질문에서 출발하여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찾는 그분들의 의지가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들은 복음의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던지신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이 역동성과 활력을 유지하는지, 주님과의 관계의 불꽃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태 16,15).
매일, 역사의 매 시간마다, 우리는 항상 이 질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여러 번 경고하셨듯이, 우리의 그리스도인 됨이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지치고 정적인 신앙의 위험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그분은 우리 삶과 교회의 활동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계신가? 우리는 이 희망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증언하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선포할 수 있는가?
형제자매 여러분, 이러한 질문에서 비롯되는 식별의 실천은 우리 신앙과 교회가 끊임없이 쇄신되고 복음 선포를 위한 새로운 길과 새로운 실천들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이것은 공동체(comunione)와 함께 우리의 첫 번째 열망이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 저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교회는 다른 어느 교회보다도 일치와 공동체(comunione)의 표징이 되도록, 살아있는 신앙으로 불타는 교회가 되도록, 모든 인간 상황 속에서 복음의 기쁨과 위로를 증언하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여정이 우리에게 가꾸도록 초대하는 이 공동체(comunione)의 기쁨 안에서, 오늘 팔리움을 받는 대주교 형제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표징은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목 임무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로마 주교와의 공동체(comunione)를 표현합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의 일치 안에서 여러분 각자가 여러분에게 맡겨진 지역 교회들에서 이 공동체를 길러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어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의 시노드 회원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이곳에 와 주시고 여러분의 사목적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백성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인 바르톨로메오 성하께서 보내신 세계 총대주교청 대표단에게 깊은 감사와 함께 인사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증언으로 세워진 우리는 신앙과 공동체(comunione) 안에서 함께 걸어갑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로마 시, 교회와 온 세상에 그분들의 전구를 간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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