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메시지, 제46차 '민족들 간의 우정을 위한 만남'

 

추기경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서명,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메시지

제46차 '민족들 간의 우정을 위한 만남'

(Meeting per l'amicizia fra i popoli)을 기리며 

[리미니, 2025년 8월 22일 - 27일]

 2025년 8월 11일

리미니 교구장 니콜로 안셀미 주교님 지극히 존경하올 주교님께,

며칠 후 리미니에서 개최될 제46차 '민족들 간의 우정을 위한 만남'의 주제는 "새로운 벽돌로 사막에 건축하리라"는 희망에 대한 초대입니다. 교황 레오 14세 성하께서는 주최 측과 봉사자, 모든 참가자에게 인사와 함께,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선택된 귀한 돌이요, 이를 믿는 이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1베드 2,6 참조)라는 기쁨을 깨닫기를 기원하십니다. 참으로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마 5,5 참조).

사막은 일반적으로 버려지고 삶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성경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발자취를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의 백성은 사막에서 탄생합니다. 백성이 사막의 험난한 길을 걸을 때에만 자유를 선택하는 성숙함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자녀들의 고통을 보고, 듣고, 알고,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내려오시는(탈출 3,7-8 참조) 성경의 하느님은 사막을 사랑과 결단의 장소로 바꾸시고, 희망의 정원처럼 꽃피게 하십니다. 예언자들은 사막을 약혼의 무대(scenario di un fidanzamento)로 상기시키며, 마음이 식을 때마다 하느님의 신실함(fedeltà)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호세 2,16 참조). 수천 년 동안 수녀와 수도자들은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인류 전체를 대표하여 침묵과 생명의 주님 곁에서 사막에 거주해 왔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올해 '만남'의 주요 전시회 중 하나가 알제리 순교자들의 증언에 헌정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교회는 불신(diffidenza)의 벽을 뛰어넘고, 하느님 아들의 강생(incarnazione)과 봉헌(donazione)의 움직임을 온전히 본받아, 인류 전체와 깊은 친교(comunione) 안에서 사막에 거주해야 하는 소명(vocazione)을 빛나게 합니다. 바로 이러한 현존(presenza)과 단순함, 깨달음(conoscenza)과 '삶의 대화(dialogo della vita)'의 길이 참된 선교의 길입니다. 이는 서로의 정체성을 대립시키며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주님으로 경배하는 이들이 기쁨과 고난 속에서 밤낮으로 자신을 내어주고 순교에 이르는 자기희생(dono di sé)입니다.

관례대로, 다양한 견해를 가진 가톨릭 신자들과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 그리고 비신앙인들과의 대화가 이어질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벽돌'을 준비하는 중요한 실천입니다. 이 새로운 벽돌은 하느님께서 이미 모두를 위해 준비해 두셨지만, 오직 서로를 환대할 때에만 열리는 미래를 건축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평화의 나라(Regno di pace)인 하느님의 나라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국가 및 국제 기관의 지도자들이 법과 중재, 대화를 우선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 종교 공동체와 시민 사회는 예언(profezia)의 길을 감행해야 합니다. 이는 사막으로 나아가 폐허와 너무나도 많은 무고한 고통 속에서 무엇이 태어날 수 있는지를 지금부터라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황 레오 14세께서는 이탈리아 주교들에게 "비폭력 교육의 길을 촉진하고, 지역 분쟁에서 중재를 위한 구상, 그리고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만남의 기회로 바꾸는 환대 프로젝트를 장려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공동체가 대화를 통해 적대감을 해체하는 법을 배우고, 정의를 실천하며 용서(perdono)를 간직하는 '평화의 집'이 되도록 하십시오. 평화는 영적인 이상향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내와 용기, 경청과 행동이 얽힌 겸손하고 일상적인 몸짓으로 이루어진 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경각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낳는 현존(presenza vigile e generativa)을 요구합니다."(2025년 6월 17일, 이탈리아 주교회의 주교들에게 한 연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과 희망과 사랑이 위대한 문화적 회심(conversione culturale)으로 이어지도록 새로운 것에 이름과 형태를 부여할 것을 격려하십니다. 사랑하올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은 문화적, 사회학적, 정치적, 철학적 범주 이전에 신학적 범주입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198항)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비천하고, 작은 이들, 힘없는 이들을 선택하셨고,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시어 우리 역사에 그분의 역사를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현실주의는 "결정적인 결정을 내리는 권력의 중심부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의 다른 측면을 보고,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215항). 역사의 희생자들,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이들, 평화를 일구는 이들, 과부와 고아들, 젊은이와 노인들, 이주민과 난민들, 그리고 온 피조물의 울부짖음 없이는 새로운 벽돌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바벨탑의 망상(sogno delirante di Babele)을 쫓으며, 하늘에 닿고 이름을 떨치는 것이 땅에 사는 유일한 인간적인 방식이라고 착각할 것입니다(창세 11,1-9 참조). 그러나 애초부터 타인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실패하고 비인간적인 경험입니다. 우리는 그에 맞서, 각자의 다름(differenza)이 표징인, 늘 새로운 신비(Mistero)와의 만남을 위한 인내를 보여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무장하지 않고 무장 해제시키는 현존(presenza)은 정의와 지속 가능성이 없는 성장의 길에 대한 대안적인 발전의 형태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능력과 상상력으로 구현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정의, 만남과 교환의 자유, 모든 이의 공동선 참여, 그리고 궁극적으로 평화를 심각하게 훼손한 이윤 숭배(idolatria del profitto)를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사막화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거나, 간접적으로 이를 용인하는 데 기여하는 신앙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진행 중인 디지털 혁명은 차별과 갈등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께 순종하여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인 이들의 창의성으로 그 안에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막은 정원이 되고, 성인들이 예고했던 '하느님의 도성'은 우리의 황폐한 장소들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교황 레오 성하께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아침 별의 전구(intercessione)를 청하시며, 모든 이가 자신이 속한 사목자들과 교회 공동체들과의 친교 안에서 헌신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모든 지체들과 협력하여, 우리는 조화롭게 행동할 것입니다. 인류가 직면한 도전은 덜 두려워지고, 미래는 덜 어두워지며, 분별은 덜 어려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성령께 순종한다면 말입니다!"(2025년 6월 7일, 신심 운동, 단체, 새로운 공동체들과 함께 한 성령 강림 대축일 철야 미사 강론).

성하의 기원에 저의 개인적인 기원을 진심으로 함께하며, 이 기회를 빌려 주교님께 깊은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주교님의 충실한 종 추기경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신자로서 우리는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었고, 그들의 실수와 그들에 대한 비난에 몰두하기가 더 쉽습니다.

폴란드, 베타니아 가족 수녀회: 사제들을 위한 기도 SOS 26년 동안 수천 명의 평신도와 사제들이 사제들을 위한 기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운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사제들을 위한 베타니아 선교회"로, 사제들의 직무 수행에 있어 영적 돌봄과 동반을 위한 다양한 형태를 제공합니다. 베타니아 가족 수녀회의 다리아 티보르스카 수녀는 바티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자로서 우리는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었고, 그들의 실수와 그들에 대한 비난에 몰두하기가 더 쉽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카롤 다르모로스( Karol Darmoros)  – 바티칸 시국 사제들을 위한 베타니아 선교회는 가브리엘라 바시스타 수녀의 주도로 1999년 2월 4일 폴란드에서 설립되었으며, 사제들의 기쁨과 걱정을 들으며 기도로 응답했습니다. 사제들을 위한 첫 번째 성체 조배 (Adorazione del Santissimo Sacramento)는 특정 사제를 위해 평생 기도하기로 약속한 여덟 명의 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오늘날 이 선교회는 8,8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창립자이자 하느님의 종인 폴란드인 유제프 마우이시아크 신부님으로부터 사제적 카리스마 (carisma)를 이어받은 베타니아 가족 수녀회에서 이끌고 있습니다. 다리아 티보르스카 수녀는 "베타니아 수녀들의 카리스마 (carisma)는 기도와 사목 활동 지원을 통해 사제들을 돕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교회에 대한 책임 베타니아 선교회는 교회에 대한 책임감에 대한 접근 방식의 변화 필요성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수녀는 "우리는 교회가 사제와 성직자의 영역이며, 평신도들은 덜 참여한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기도 안에서 그리고 기도를 통해 변화하고 있습니다" 라고 언급했습니다. 사제들을 위한 베타니아 선교회는 이로써 신자들이 사제들을 그들의 성덕과 성소 (vocazione) 안에서 지...

교황 레오 14세, 교황 권고, DILEXI TE ,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 관하여

  교황 권고(ESORTAZIONE APOSTOLICA) DILEXI TE 교황 레오 14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 관하여 “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묵시 3,9). 주님께서는 다른 그리스도인 공동체들과 달리, 아무런 영향력 이나 자원 도 없이 폭력과 멸시에 노출되어 있던 한 공동체에게 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힘이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내가 그들을 데려가 네 발 앞에 엎드리게 하겠다”(묵시 3,8-9). 이 성경 구절은 성모 마리아의 찬가 를 떠올리게 합니다. “권좌에서 통치자들을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올리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이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2-53). 묵시록의 사랑 선언 은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그리스도의 성심 이 지닌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 관한 회칙 Dilexit nos 에서 깊이 다루신 다함이 없는 신비 를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이 회칙을 통해 예수님께서 “사회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과 자신을 동일시 하시는 방식과, 당신의 사랑 을 끝까지 내어주심으로써, 특히 “ 가장 약하고 비참하며 고통받는 ” 처지에 놓인 모든 인간의 존엄 을 보여주시는 방식에 감탄했습니다. [1] 그리스도의 사랑 을 깊이 관상하는 것 은 “다른 이들의 고통과 필요에 더 많은 관심 을 기울이도록 돕고,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그분의 해방 사업 에 참여하게 하며, 그분의 사랑 을 전파하는 도구 가 되게 합니다.” [2] 이러한 이유로, 회칙 Dilexit nos 와 맥을 같이하여 ,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 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돌봄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돌봄 에 관한 교황 권고 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 제목은 Dilexi te 였으며,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이들 각자에게 “너는 힘이 적고 영향력 이 적지만, ‘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묵시 3,9)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그려보셨습니다 . 저는 이 계획 을 마치 유...

교황 레오 14세, 수요 일반 알현 (2025년 5월 28일 수요일)

우리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II. 예수님의 생애. 비유들  7. “우리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루카 10,33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관점을 바꾸고 희망에 열려 있도록 이끄는 복음의 몇몇 비유를 계속해서 묵상합니다. 때때로 희망이 부족한 것은 우리가 사물을 보는 어떤  경직되고 닫힌 방식 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며, 비유는 우리가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도록 돕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박식하고 준비된 사람, 곧  율법 교사 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다른 사람들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루카 10,25-37 참조). 사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상속받는지(eredita)”에 대해 예수님께 묻는데, 이는 영원한 생명을 분명한 권리로 이해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 뒤에는 어쩌면  관심에 대한 필요 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설명을 요구하는 유일한 단어는 문자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이웃(prossimo)”이라는 용어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을 변화시키기 위한 여정이 되는 비유를 말씀하시며, ‘누가 나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누가 사랑을 베풀었는가?’로 옮겨가게 하십니다. 첫 번째는 미성숙한 질문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이해한 성숙한 사람의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가 한구석에 앉아 기다릴 때 하는 질문이고, 두 번째는 우리를  길을 나서게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실제로  길 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삶처럼  어렵고 험난한 길 입니다. 그것은 산 위에 있는 도시인 예루살렘에서 해수면 아래에 있는 도시인 예리코로 내려가는 한 남자가 지나던 길입니다. 이는 이미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리 보여주는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