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 여러분,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갈라 6,14). 사도 바오로의 무덤 곁에 모인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 말씀은, 거룩한 십자가 현양 축일을 맞아 21세기 신앙의 순교자들과 증인들을 기리는 오늘 이 자리를 이끌어 줍니다.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발치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자 '순교자들의 영광'(비잔틴 전례의 십자가 현양 축일 저녁 기도 참조)으로 묘사된 그 십자가 발치에서, 저는 오늘 이 기념 미사에 저의 초대에 응해 주신 정교회, 고대 동방 교회, 그리스도교 공동체, 그리고 일치 운동 단체 대표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께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치르는 순교(martyria)가 “당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와 가장 참된 친교를 이루는 것이며, 이 희생을 통해 한때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을 가까이 데려오시는 것”(에페 2,13 참조)이라고 확신합니다(회칙 「일치를 위해」(Ut unum sint), 84항). 우리는 오늘날에도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와 함께, 미움이 삶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는 듯했던 곳에서 이 용감한 복음의 봉사자들과 신앙의 순교자들이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2000년 5월 7일 20세기 신앙의 증인들 기념).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이 우리 형제자매들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로 하느님의 참된 얼굴, 곧 인류를 향한 그분의 무한한 자비(compassione)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이사 53,4). 그분은 세상의 미움과 폭력을 스스로 짊어지시고, 모욕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과 운명을 함께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어려운 상황과 적대적인 환경에서 신앙을 증언하며 주님과 똑같은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처럼 박해받고, 단죄받고, 죽임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나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0-11). 이들은 복음에 대한 충실함, 정의를 위한 헌신, 여전히 자유가 침해되는 곳에서 종교의 자유를 위한 투쟁, 그리고 가장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녀 수도자와 평신도, 사제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르면 그들은 “패배자”였습니다. 하지만 지혜서가 우리에게 말하듯이 “사람들의 눈에 비록 벌을 받더라도 그들의 희망은 불사불멸로 가득 차 있다”(지혜 3,4).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희년(Anno giubilare)을 맞아 이 용감한 신앙의 증인들이 지닌 희망을 기념합니다. 그들의 순교는 미움과 폭력,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에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하기에 불사불멸로 가득 찬 희망입니다. 그들이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했을지라도 그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거나 그들이 바친 사랑을 지울 수 없기에 불사불멸로 가득 찬 희망입니다. 그들의 증언이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예언으로 남기기에 불사불멸로 가득 찬 희망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비무장한 희망입니다. 그들은 힘과 폭력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복음의 나약하고 온유한 힘을 포용하며 신앙을 증언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 사실 나는 약할 때에야 바로 그때에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9-10).
저는 아마존의 무토지 주민들을 위해 헌신했던 도로시 스탱(Dorothy Stang) 수녀의 복음적인 힘을 생각합니다. 그녀를 죽이려던 사람이 무기를 요구했을 때, 그녀는 성경을 보여주며 “이것이 나의 유일한 무기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라크 모술의 칼데아인 사제 라기드 간니(Ragheed Ganni) 신부를 생각합니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증언하기 위해 싸움을 포기했습니다. 저는 솔로몬 제도에서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멜라네시아 형제회(Melanesian Brotherhood)의 성공회 신자 프란치스코 토피(Francis Tofi) 형제를 생각합니다. 20세기의 대규모 독재 정권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는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증가하고 있기에 이처럼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이 용감한 복음의 봉사자들과 신앙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피 흘림에 이르기까지 살아낸 행복 선언 복음의 프레스코화”(성 요한 바오로 2세, 2000년 5월 7일 20세기 신앙의 증인들 기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하며,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피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라는 초기 교회의 확신처럼, 제3천년기에도 순교자들의 피가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 낳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들을 기억합니다(테르툴리아누스). 우리는 다른 교회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이 기억을 간직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그리스도교 전통의 신앙 증인들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가톨릭 교회의 약속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성인 시성성(Dicastero per le Cause dei Santi) 산하의 새 순교자 위원회(Commissione per i Nuovi Martiri)는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을 위한 부서(Dicastero per la Promozione dell’Unità dei Cristiani)와 협력하여 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시노드에서 우리가 인정한 것처럼, 피의 일치 운동(ecumenismo del sangue)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함께 목숨을 바치는 서로 다른 소속의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그들의 순교 증언은 어떤 말보다 웅변적입니다. 일치는 주님의 십자가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제16차 시노드 총회, 최종 문서, 23항). 이토록 많은 증인들의 피가 우리가 같은 구원의 잔을 마시게 될 복된 날을 앞당겨 주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가톨릭 교회를 겨냥한 테러 공격으로 희생된 파키스탄 어린이 아비시 마시(Abish Masih)는 자신의 공책에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Making the world a better place)”라고 썼습니다. 이 아이의 꿈이 우리가 용감하게 신앙을 증언하고, 평화롭고 형제애 넘치는 인류의 누룩이 되도록 우리를 독려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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