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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의 메시지, 빈첸시오 가족에게(2017년 9월 27일)

 

교황 프란치스코의 메시지

빈첸시오 가족에게

카리스마 설립 400주년을 기념하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카리스마 설립 400주년을 기념하며, 저의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며, 성 빈첸시오 드 바오로의 가치와 현재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분은 늘 하느님(Dio)과 자신을 찾는 여정을 걸으며 살아왔습니다. 이 끊임없는 탐색 가운데 은총의 활동이 자리 잡았습니다. 목자였던 그분은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착한 목자 예수님과 눈부신 만남을 가졌습니다. 특히 자비에 목마른 한 남자의 눈빛과 모든 것이 필요한 한 가족의 얼굴에 마음이 움직였을 때 그러했습니다. 그곳에서 성인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느꼈고,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고,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분(예수님)을 조건 없이 섬기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성 빈첸시오는 훗날 이 가난한 이들을 “주님과 주인”(signori e padroni)(Correspondance, entretiens, documents, XI, 393)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성인의 삶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봉사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한 말씀이 그분에게 사명의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루카 4,18 참조).

가난한 이들에게 예수님을 알리려는 열망에 불타, 성인은 특히 대중 선교를 통하여 복음 선포에 전념하였고, 사제들의 양성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분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작은 방법’(piccolo metodo)을 실천했습니다. 무엇보다 삶으로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매우 소박하게, 대화적이며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Spirito)께서는 그분을 교회 안에서 관대함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한마음 한뜻”(un cuore solo e un’anima sola)(사도 4,32)이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성 빈첸시오는 ‘자선회’(Carità)를 설립하여, 가장 필요한 이들을 공동체 안에서 살면서 보살피고 자신의 재산을 기쁘게 나누게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과 가난한 이들이 값진 보물이며, 그분이 즐겨 말씀하셨듯이, “가난한 이들에게 갈 때 예수님을 만난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1617년에 뿌려진 이 ‘겨자씨 한 알’(granello di senape)은 선교회(Congregazione della Missione)와 사랑의 딸들 수녀회(Compagnia delle Figlie della Carità)를 싹트게 했고, 여러 수도회와 협회로 가지를 뻗어 여러분의 가족이라는 큰 나무(마르 4,31-32 참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겨자씨 한 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 빈첸시오는 결코 주역(protagonista)이나 선동가(trascinatore)가 되려 하지 않았고, ‘작은 씨앗’(piccolo seme)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분은 겸손, 온유, 단순성이 죽음으로써 생명을 주는 씨앗의 법칙(요한 12,20-26 참조)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법칙만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줌으로써 받고, 자신을 잃음으로써 발견하며, 드러내지 않을 때 빛난다는 법칙입니다. 또한 그분은 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으며,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함께 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악(Santa Luisa de Marillac)영적 섬세함인간적 감수성에서 드러난 여성의 놀라운 능력을 높이 평가한 그분의 선지자적 통찰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십니다. 빈첸시오 가족의 중심에는 “가장 비참하고 버려진 이들”(più miserabili e abbandonati)을 찾는 일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의 비천한 봉사(servizi)를 해 드릴 자격조차이 없다”(Correspondance, entretiens, documents, XI, 392)는 겸손한 깨달음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께 감사드리고 카리스마를 심화하는 올해가 여러분이 샘에 갈증을 해소하고, 본래 정신의 근원에서 상쾌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마시는 은총의 샘(sorgenti di grazia)이 사랑 안에서 굳건하고 바위 같은 마음, 곧 “뛰어난 사랑의 모범”(modelli insigni di carità)(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Deus caritas est, 40항)에서 솟아났음을 잊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흘러나온 반석(roccia)을 바라볼 때에만 같은 샘의 신선함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반석가난한 예수님이시며, 그분은 가난하고 목소리 없는 이들 안에서 자신을 알아보아 주기를 요청하십니다. 그분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과거로 인해 무너지고 허약한 삶(esistenze fragili)을 만날 때, 반석이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는 단단하고 흠집이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고통에 무감각한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너희가 잘려 나온 반석을 보고, 너희가 파헤쳐져 나온 채석장을 보아라”(이사 51,1) 하신 말씀처럼, 역경에 맞서 흔들림 없이, 험난한 날씨에 견딜 수 있는 굳건한 지지점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간 조건의 변두리에 다가가서, 여러분의 능력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이신 주님의 성령을 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메마른 땅에 싹트는 씨앗처럼,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위로의 진통제처럼, 버려짐으로 차갑게 식고 무시당하여 굳어진 많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사랑의 불처럼 세상에 흩뿌리십니다.

실로 우리 모두는 주님이신 반석에서 물을 마시고 그분에게서 솟아나는 사랑으로 세상의 갈증을 해소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사랑(Carità)은 교회의 중심에 있으며, 교회가 행동하는 이유이자 그 사명의 영혼(anima)입니다. “사랑은 교회의 사회 교리의 으뜸가는 길이다. 이 교리에 의하여 제시된 모든 책임과 노력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율법 전체의 요약이다”(베네딕토 16세, 회칙 「진리 안의 사랑」 Caritas in veritate, 2항). 이것이 교회가 더욱더 사랑의 어머니이자 스승이 되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이며, 서로 간의 사랑과 모든 이를 향한 사랑 안에서 성장하고 넘쳐나게 하는 길(1테살 3,12 참조)입니다. 즉, 내부적으로는 친교(comunione) 안에서 일치하고, 외부적으로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주님을 모든 면에서 본받기 위해 자신에게 유익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사랑의 겉보기 약함을 자랑하는 유일한 이유로 삼아(2코린 12,9 참조) 자신을 완전히 되찾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강력하게 울려 퍼짐을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셨지만 우리 때문에 가난하게 되셨다. 이처럼 교회도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인간적인 수단을 필요로 하면서도 지상적인 영광을 추구하도록 설립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모범으로써 겸손과 자기희생을 널리 퍼지게 하려고 설립되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파견되신 것처럼, 교회도 인간의 나약함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배려를 베푼다. 더욱이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 안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창립자의 모습을 알아보며, 그들의 궁핍을 덜어 주려고 힘쓰고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려고 노력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Lumen gentium, 8항).

성 빈첸시오는 이 모든 것을 삶으로 실현했으며, 따라서 오늘날에도 우리 각자와 교회인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증언은 우리가 늘 여정 중에 있으며, 주님의 시선과 그분의 말씀(Parola)에 놀라도록 준비되어야 함을 초대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마음의 겸손, 온전한 순명(disponibilità piena), 그리고 온순한 겸양(umiltà docile)을 요청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형제적 친교와 세상 안에서의 용감한 선교(missione coraggiosa)로 이끌어 줍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복잡한 언어, 자기중심적인 수사, 그리고 당장에는 안심이 되지만 하느님의 평화를 심어주지 못하고 종종 선교를 방해하는 물질적 안정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요청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마음”(cuore che vede)(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Deus caritas est, 31항 참조)의 진정성을 가지고 사랑의 창의성에 투자하도록 촉구합니다. 실제로 사랑(carità)은 과거의 좋은 습관에 만족하지 않고, 현재를 변화시킬 줄 압니다. 이는 오늘날 세계화된 사회의 변화무쌍한 복잡성 속에서 더욱더 필요합니다. 여기서는 자선과 원조의 특정 형태가 관대한 의도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착취와 불법의 형태를 부추기고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혜택을 가져다주지 못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을 생각하고, 이웃과의 가까움을 조직하고, 양성에 투자하는 것성 빈첸시오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지는 시의적절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모범은 동시에 우리에게 가난한 이들, 오늘날의 새로운 가난한 이들, 오늘날의 너무나 많은 가난한 이들에게 공간과 시간을 내어주고, 그들의 생각과 어려움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도록 자극합니다. 고통받는 이들과의 접촉이 없는 그리스도교비인격적인 그리스도교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만질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만나고, 가난한 이들을 선호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목소리를 내어 주십시오. 그들의 존재가 덧없는 문화(cultura dell’effimero)에 의해 침묵당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저는 다가오는 11월 19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기념“가난한 예수님을 따르는 소명” 안에서 우리를 도와, “가장 낮은 이들과 가장 궁핍한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구체적인 표징이 더욱더 훌륭하게” 되게 하고 “쓰레기와 낭비의 문화에 반작용하도록”(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메시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합시다」 Non amiamo a parole ma con i fatti, 2017년 6월 13일) 돕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이며, 옷과 존엄을 빼앗기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형제 안에서, 그리고 또한 의심하고, 무지하고, 죄에 완고하며, 고통받고, 모욕적이며, 괴팍하고 성가신 형제 안에서 주 예수님을 발견하는 은총(grazia)을 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상처 안에서 사랑의 활력, 죽음으로써 생명을 주는 씨앗의 행복, 상처 입은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는 풍요로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기쁨을 발견하기를 청합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 없이, 하느님 안에 잘 자리 잡은 신뢰를 가지고, 오늘과 내일의 도전 앞에서 창의적이기를 바랍니다. 성 빈첸시오가 말했듯이, “사랑은 무한히 창조적이기” 때문입니다.

바티칸에서, 2017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바오로 기념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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