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 일반 알현
성 베드로 광장 2025년 12월 17일 수요일
2025년 12월 10일 일반 알현
교리 교육 시리즈: 2025년 희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4. 그리스도의 부활과 현대 세계의 도전 8. 불안한 마음의 안식처인 파스카
일반 알현 전 바오로 6세 홀에서 병자들에게 전하는 성하의 인사
모두 반갑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짧은 인사와 축복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분을 추위와 같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보호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비가 오지는 않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마 여러분이 더 편안하실 것입니다. 나중에 화면을 통해 알현을 지켜보실 수 있고, 원하신다면 밖으로 나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좀 더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을 빌려 여러분께 인사하고, 주님의 축복을 전하며, 축원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미 성탄 축일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이 성탄 시기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의 가족,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사랑과 신뢰 안에서 여러분이 언제나 주님의 손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드리고, 한 분씩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강복)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인간의 삶은 우리를 무언가 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드는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오늘날 어디에서나 다양한 분야에서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한 신속함이 요구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경험의 이러한 특징을 어떻게 비추어 줍니까? 우리가 죽음에 대한 그분의 승리에 동참할 때, 우리는 쉬게 될까요? 신앙은 우리에게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기쁨인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 사실이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항상 만족을 주지는 못하는 수많은 활동에 몰두해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 중 많은 부분은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책무를 맡아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노고를 감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과 삶 속에 깊이 관여하셨고, 자신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끝까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충만함을 주는 대신, 우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소용돌이가 되어 평온함을 앗아가고,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최선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는 피곤함과 불만족을 느낍니다. 시간은 수천 가지 실용적인 일들로 흩어지는 것 같지만, 그것들은 우리 존재의 궁극적인 의미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때로는 활동으로 가득 찬 하루의 끝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는 하나의 마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우리 인간성 전체의 상징이며 사고와 감정, 갈망의 종합이자 우리 인격의 보이지 않는 중심입니다. 복음사가 마태오는 예수님의 이 아름다운 말씀을 전하며 마음의 중요성을 성찰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너의 보물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 21 참조)
그러므로 진정한 보물은 지상의 금고나 금융 투자에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간직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금융 투자는 그 어느 때보다 광기 어린 모습으로 불공정하게 집중되어 있으며, 수백만 명의 인명이라는 피의 대가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파괴를 무릅쓰고 우상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들을 성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끊임없이 마주하는 수많은 과업 속에서 흩어질 위험, 때로는 절망과 의미의 상실이라는 위험이 겉보기에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점점 더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삶을 파스카의 표징 안에서 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바라보는 것은 인간 본연의 정수, 즉 우리의 마음인 ‘불안한 마음’(cor inquietum)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불안한’이라는 형용사를 통해 온전한 완성을 향해 뻗어 나가는 인간의 열망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전체 문장은 그의 저서 「고백록」의 시작 부분에 나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당신을 향해서 만드셨으므로, 저희의 마음은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불안하나이다.” (1, 1, 1)
불안은 우리 마음이 목적이나 목표 없이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적지인 ‘집으로의 귀환’을 향하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진정한 안식처는 이 세상의 재물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것, 곧 하느님의 사랑,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신 하느님’을 얻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물은 길에서 만나는 이웃을 사랑할 때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살과 피를 가진 형제자매들이며, 그들의 존재는 우리 마음에 호소하고 질문을 던지며, 우리 마음이 열리고 자신을 내어주도록 부릅니다. 이웃은 당신에게 속도를 줄이고,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때로는 계획을 바꾸고, 어쩌면 방향까지 바꾸라고 요청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인간 마음의 움직임에 담긴 비밀입니다.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 사라지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일시적인 것, 지나가는 것 너머에 있는 의미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희망 없이, 자신이 결핍이 아니라 충만함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는 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강생,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이 희망에 견고한 토대를 놓아주셨습니다. 불안한 마음은 자신이 창조된 목적인 사랑의 역동성 안으로 들어갈 때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달할 곳은 확실합니다. 생명은 승리하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상의 모든 죽음 속에서도 계속해서 승리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희망입니다. 우리에게 이 희망을 주신 주님을 언제나 찬미하고 감사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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