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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비오 10세 회칙, AD DIEM ILLUM LAETISSIMUM (1904년 2월 2일)

그날의 기쁨 (Ad Diem Illum Laetissimum)

복 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선포 50주년을 맞아 가톨릭 세계에 특별 희년을 선포하시는 교황 비오 10세 성하의 회칙

사도좌와 평화와 친교를 맺고 있는 존경하는 형제들인 총대주교, 수석 주교, 대주교, 주교 및 기타 교구장님들께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인사와 사도적 축복을 전합니다.

불과 몇 달만 지나면, 거룩한 기억으로 남으실 저의 선임자 비오 9세 교황님께서 수많은 추기경들과 주교들에 둘러싸여, 그르침 없는 교도권의 권위로써 "복 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원죄의 모든 흠에서 면제되셨다."라는 사실이 하느님께 계시된 진리임을 선포하고 확정하신 지 50년(10개의 5년)이 되는 매우 기쁜 날이 돌아옵니다. 그 선포를 전 세계의 신자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는지, 얼마나 큰 기쁨과 환희의 표현으로 맞이하였는지는 모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실로 인류의 기억 속에,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향해 그토록 폭넓고, 그토록 일치된 마음으로 존경을 표한 일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원죄 없으신 동정녀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함으로써, 그 거룩한 기쁨의 메아리가 우리 마음속에 다시 울려 퍼지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를 향한 신앙과 사랑의 그 장엄했던 광경이 먼 시간을 넘어 다시 재현되리라는 희망을 품는 것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우리가 이것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복 되신 동정녀께서 베풀어 주신 지극한 은총에 힘입어 제가 언제나 그분을 향해 품어왔던 신심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하는 것은, 위대하신 하느님의 어머니께 사랑과 공경의 증거를 거듭 바치고자 늘 준비되어 있는 모든 가톨릭 신자의 열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바람이 단지 인간적인 기대가 아니라, 어떤 신비로운 영감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선임자 비오 교황님과 모든 주교님이 하느님 어머니의 원죄 없는 잉태를 장엄하게 선포함으로써 품었던 그 큰 기대가 머지않아 충만히 채워지리라는 것을 저는 예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까지 그 기대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불평하며 예레미야의 말을 인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바랐건만 좋은 일이 없고, 치유의 때를 바랐건만 오히려 공포가 덮쳤구나." (예레 8, 15) 하지만 하느님의 업적을 꿰뚫어 보지도, 진리 안에서 깊이 헤아리지도 못하는 이러한 '믿음이 약한' 이들을 누가 꾸짖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중재자이신 동정녀를 통하여 이 기간 내내 교회에 베푸신 그 은밀한 은총의 선물들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그토록 적절한 시기에 개최된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곧 터져 나올 오류들에 맞서 교황의 무류한 교도권이 그토록 시의적절하게 확립된 것은 또 어떠합니까?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직접 뵙고 공경하기 위해 모든 계층과 모든 지역의 신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 새롭고 전례 없는 신심의 열기는 무엇입니까? 또한, 가장 격동적인 시기에 그 누구보다 긴 재임 기간을 누리며 교회를 거룩하게 통치하신 저의 선임자 비오 교황님과 레오 교황님 두 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는 경탄스럽지 않습니까?

더욱이 비오 교황님께서 마리아가 잉태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았음을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한다고 선포하자마자, 루르드(Lourdes)라는 마을에서 동정녀 자신이 보여주시는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거대한 역사와 웅장한 건축으로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를 위한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곳에서 날마다 하느님의 어머니의 전구로 일어나는 기적들은 오늘날 사람들의 불신앙을 쳐부수는 명백한 증거들입니다.

그러므로 곧 지나갈 지난 50년 동안, 동정녀의 자비로운 탄원으로 하느님께서 베푸신 그 많고 큰 은총들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다."라고 희망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더욱이 하느님의 섭리는 큰 고난의 끝이 해방의 때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해 줍니다. "그분의 때가 올 날이 머지않았고 그분의 날은 지체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야곱을 가엾이 여으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이사 14, 1) 그리하여 우리도 머지않아 이렇게 외칠 희망을 품게 됩니다. "주님께서 악인들의 지팡이를 꺾으셨다. 온 땅이 쉬며 잠잠하고 사람들은 기뻐하며 환호한다." (이사 14, 5.7)

그러나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음을 선포한 50주년이 왜 그리스도인들 마음속에 특별한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가 지난번 회칙에서 제시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는 것(instaurare omnia in Christo)'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고, 그분을 통해 자녀로서의 완전한 입양을 얻어 "하느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에페 1, 4 참조)이 되게 하는 데 있어, 마리아를 통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빠른 길은 없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참으로 마리아에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 45)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낳으시기 위해, 본성상 진리이신 그분을 태중에 모신 것은, "새로운 질서, 새로운 탄생으로 낳으시어... 자신의 본성 안에서는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 우리 본성 안에서 보이게 되도록"(성 레오 대교황, 주님 성탄 강론 2, 2)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히브 12, 2)가 되셨으니,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를 신비의 참여자이자 수호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다음으로 가장 고귀한 기초이신 그분 위에 모든 세기의 신앙의 건물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하느님께서 인류의 회복자이자 신앙의 창시자이신 분을 동정녀를 통하지 않고 다른 길로 우리에게 주실 수는 없었겠습니까? 물론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가 성령으로 잉태하신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분(God-Man)을 모시도록 정하셨고, 마리아는 그분을 자신의 태중에 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길은 오직 마리아의 손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 안에 올 미래의 은총"에 대해 예언할 때마다, 인류의 구원자는 거의 항상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와 함께 등장합니다. 땅을 다스릴 어린양은 보내지겠지만 광야의 바위에서 나올 것이며, 꽃은 피어오르겠지만 이새의 뿌리에서 나올 것입니다. 아담은 뱀의 머리를 짓밟는 마리아를 미리 보며 저주로 인한 눈물을 거두었습니다. 구원의 방주에 갇힌 노아도, 아들의 죽음을 면한 아브라함도,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본 야곱도, 불타면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놀란 모세도, 하느님의 궤를 모셔오며 춤추고 노래한 다윗도,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구름을 본 엘리야도, 모두 마리아를 생각했습니다.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율법의 마침과 예형과 예언의 진리를 그리스도 다음으로 마리아 안에서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이르는 길은 동정녀를 통하여, 특히 그분을 통하여 가장 잘 열린다는 것을, 예수님과 30년 동안 한집안에서 살며 어머니와 아들로서 친밀한 교감을 나누신 분이 오직 마리아뿐임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탄생의 놀라운 신비, 그리스도의 유년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의 시작이자 기초인 인간 본성을 취하신 그 신비를 어머니보다 더 깊이 안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마리아는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의 주님 성전에서 일어난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을"(루카 2, 19.51 참조)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획과 숨겨진 뜻에 참여하며 아드님의 삶을 사셨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만큼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이는 없으며,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데 있어 마리아보다 더 적절한 인도자이자 스승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암시했듯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데 있어 이 동정녀보다 더 강력한 분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신 한 분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 17, 3)이라면,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생명력 있는 지식을 얻게 되고, 마리아를 통해 그 생명의 원천이자 시작이신 그리스도께 더 쉽게 다가가게 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서 왜 우리에게 이러한 뛰어난 선물들을 베풀고자 하시는지, 그 수많은 이유를 잠시만 살펴보더라도 우리의 희망은 얼마나 커지겠습니까!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아니십니까?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누구나 이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자이시기도 합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자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처럼 구체적인 육체를 취하셨지만, 우리 인류의 회복자로서는 영적인 육체, 곧 이른바 신비체(Mystical Body)를 가지셨으니,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친교입니다. "우리는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룹니다." (로마 12, 5)

동정녀께서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실 때, 단지 그분이 인간이 되어 인간 본성을 취하시게 하기 위해서만 잉태하신 것이 아니라, 취하신 그 본성을 통해 죽을 운명인 사람들의 구원자가 되시게 하려고 잉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목자들에게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루카 2, 11)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정결하신 어머니의 한 태중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취하심과 동시에 "그분을 믿게 될 이들"로 이루어진 영적인 몸도 결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께서 구원자를 태중에 품으셨을 때, 구원자의 생명이 품고 있는 모든 이의 생명 또한 품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결합한 우리 모두는, 사도의 말씀대로 "그분 몸의 지체들이고 그분의 살과 뼈에서 난 이들"(에페 5, 30 참조)로서, 머리와 연결된 몸처럼 마리아의 태중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이고 신비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마리아의 자녀라 불리며, 그분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영적으로는 어머니이시니... 우리가 바로 그것인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이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거룩한 동정성』, 6장)

복 되신 동정녀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는 동시에 사람들의 어머니이시라면,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신"(콜로 1, 18)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지체인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을 부어주시도록, 특히 우리가 그분을 알고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시려고"(1요한 4, 9), 마리아께서 온 힘을 다해 애쓰신다는 것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더 나아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를 칭송함에 있어, 단지 "사람들의 지체에서 태어나실 외아드님 하느님께 육신의 재료를 제공하여"(성 베다, 루카 복음 주해 4권 11장)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을 마련해 드렸다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 희생 제물을 지키고 기르며, 정해진 때에 제단에 바치는 임무 또한 그분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아들의 삶과 고난은 결코 분리되지 않았으니, 예언자의 말씀은 두 분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제 목숨은 슬픔으로, 제 년월은 탄식으로 스러져 갑니다." (시편 31, 11)

아드님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그분은 끔찍한 광경에 넋을 잃고 서 계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외아드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바쳐지는 것을 기뻐하시며, 아드님이 겪으신 모든 고통을 가능하다면 당신 자신이 훨씬 더 기꺼이 겪으셨을 만큼 깊이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성 보나벤투라, 명제집 1권 48, 의문 4)

마리아와 그리스도 사이의 이러한 고통과 의지의 일치로 인해, 마리아는 "잃어버린 세상의 회복자(Reparatrix)가 되기에 가장 합당한 자격을 갖추셨으며"(에드머, 『동정 마리아의 탁월함』, 9장),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음과 피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모든 은총의 분배자(Dispensatrix)가 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은총을 나누어 주는 권한이 그리스도의 고유하고 사적인 권리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은총들은 오직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분만이 권능으로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한 대로, 어머니께서 아드님과 나누신 고통과 고난의 일치 때문에, 존엄하신 동정녀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 앞에서 전 세계의 가장 강력한 중재자(Mediatrix)이자 화해자"(비오 9세,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가 되시는 특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원천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모두 그분의 충만함에서 은총을 받았습니다." (요한 1, 16) "온몸은 머리로부터 각 마디를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연결되어... 사랑으로 성장하여 자신을 건설합니다." (에페 4, 16 참조) 그러나 성 베르나르도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마리아는 '수로(Aquaeductus)'이시며(성모 탄생 축일 강론), 또는 몸과 머리를 연결하고 머리의 힘과 능력을 몸으로 전달하는 '목'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머리의 목이시니, 그분을 통하여 모든 영적 은사가 그분의 신비체에 전달됩니다." (성 베르나르디노, 영원한 복음, 사순 제10강론)

따라서 하느님께만 속한 초자연적 은총을 만들어내는 힘을 하느님의 어머니께 돌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거룩함과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있어 다른 모든 이를 능가하며, 그리스도에 의해 인간 구원 사업에 참여하도록 불리셨기에, 그리스도께서 철저한 자격(de condigno)으로 우리를 위해 얻으신 것을 마리아께서는 적절함(de congruo)으로 얻어 주시며, 은총을 베푸시는 으뜸가는 봉사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지만"(히브 1, 3), 마리아는 여왕으로서 그분 오른쪽에 서 계시어, "위험에 처한 모든 이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자 가장 믿음직한 도움이시니, 그분의 인도와 보호 아래, 그분의 전구와 보살핌 속에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절망할 것이 없습니다." (비오 9세,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봅시다. 나자렛 집에서 골고타 언덕까지 예수님의 변함없는 동반자가 되셨고, 누구보다 그분의 마음속 비밀을 잘 아시며, 어머니의 권리처럼 그분 공로의 보물을 관리하시는 마리아야말로,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게 하는 가장 위대하고 확실한 도움이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정당하고 옳지 않겠습니까?

마귀의 간계나 잘못된 생각에 빠져 동정녀의 도움을 건너뛸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의 비참한 상태가 이것을 너무나 명백하게 증명합니다! 불쌍하고 불행한 그들은 그리스도를 공경하기 위해 마리아를 소홀히 한다고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마태 2, 11 참조) 외에는 어디에서도 아기를 찾을 수 없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이러한 까닭에 저는 지금 곳곳에서 준비하고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축제가 다음과 같은 목적을 지향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께 바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하고 기쁜 영광은 다름 아닌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성전에서 행사를 열고,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며, 도시가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십시오. 이 모든 것은 신심을 북돋우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마음의 의지가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종교의 겉모습만 갖춘 형식을 가지게 될 뿐입니다. 동정녀께서 이런 모습을 보신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빌려 우리를 마땅히 꾸짖으실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마태 15, 8)

하느님의 어머니를 향한 진정한 신심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마음의 활동과 분리된 육체의 활동은 이 일에서 아무런 가치도 유익도 없습니다. 그 활동은 오직 하느님이신 마리아의 아드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는 데로 향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의지를 일치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기에, 우리의 의지는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의지와 같아야 합니다. 즉, 주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가장 슬기로운 동정녀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꾼들에게 하신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 5)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마태 19, 17)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복 되신 동정녀를 향한 신심이 죄를 짓지 않게 막아주지 못하거나 나쁜 습관을 고치려는 결심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그 신심은 본연의 열매가 없기에 거짓되고 기만적인 것입니다.

혹시 이에 대해 확인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하느님의 어머니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 자체에서 그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과 마찬가지로 진리의 원천인 가톨릭 전승(Tradition)을 제쳐두더라도, 동정 마리아의 잉태가 원죄 없다는 확신이 어느 시대에나 그리스도인의 감각과 그토록 일치하여 신자들의 마음에 깊이 심어지고 타고난 것처럼 여겨진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뱀의 머리를 짓부술 여인이 한때나마 뱀에게 짓눌렸다거나, 주님의 어머니가 악마의 딸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끔찍하게 여깁니다."(디오니시오 카르투시오, 명제집 3권 3, 1)라고 디오니시오 카르투시오는 이 문제의 핵심을 훌륭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백성의 지성으로는, 거룩하고 흠 없고 순결하신 그리스도의 육신이 찰나의 순간이라도 죄에 물들었던 육체에서 취해졌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와 하느님은 무한한 대립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 본성을 취하시어 "당신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씻어 주시기"(묵시 1, 5 참조) 전에, 당신의 잉태 첫 순간에 특이한 은총과 특권으로 동정녀 어머니를 원죄의 모든 흠에서 보존하셔야만 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죄를 끔찍이 싫어하시어,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가 될 분이 단순히 의지적인 죄뿐만 아니라, 아담의 모든 자손에게 나쁜 유산처럼 지워지는 원죄의 흔적조차 없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미리 입어 주어진 이 지극히 특별한 은총을 생각할 때, 마리아를 공경하여 그분의 은총을 입고자 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의무가 바로 악하고 부패한 습관을 고치고 금지된 것을 탐하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임에 누가 의문을 품겠습니까?

더 나아가 동정녀를 향한 자신의 신심이 올바르고 모든 면에서 완전하기를 바란다면(누구나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분의 모범을 본받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영원한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인내와 거룩함의 형상을 모방하여 자신 안에 표현하는 것은 하느님의 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 8, 29)

그러나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그토록 위대하신 모범 앞에서는 쉽게 주눅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다른 모범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 본성이 허락하는 한 그리스도께 가장 가까운 분이시면서도, 우리의 미약함에 더 잘 맞는 분이십니다.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는 참으로 그러한 분이셨기에, 그 한 분의 삶이 모든 이의 가르침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올바른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삶이 여러분에게 동정의 표상으로 그려지게 하십시오. 그 삶은 거울처럼 정결의 아름다움과 덕행의 모범을 비추어 줍니다." (『동정녀들에 관하여』, 2권 2장)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어떤 칭찬할 점도 빠뜨리지 않고 본받아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신자들이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지혜의 핵심이자 뼈대와 같은 덕행들, 곧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믿음, 희망, 사랑을 그분에게서 배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동정녀의 삶 어느 부분도 이 덕행들의 빛이 비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특히 아드님이 돌아가실 때 그 곁에 서 계셨던 순간에 가장 환하게 빛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다"(요한 19, 7)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분 안에서 신성을 변함없이 알아보고 경배하셨습니다. 죽은 아들을 무덤에 모셨지만, 다시 살아나실 것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향해 타오르는 사랑은 그분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동반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고통을 잊은 채 아드님과 함께 살인자들을 위한 용서를 청하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마태 27, 25)라고 완강하게 소리쳤음에도 말입니다.

원죄 없으신 잉태, 즉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인 이 교리에 대한 묵상이, 이 덕행들을 지키고 올바로 실천하는 데 얼마나 크고 고유한 도움을 주는지 잊지 맙시다! 사실, 신앙을 미워하는 자들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수많은 오류를 퍼뜨려 많은 이의 신앙을 흔들리게 합니까? 그들은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했고 언젠가 자신의 지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그리하여 원죄와 그로 인한 결과들, 즉 인류의 기원이 부패했고 그로 인해 모든 인간이 손상되었으며, 따라서 인간에게 악이 들어왔고 구원자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합니다.

이것을 전제하면 그리스도께서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으며, 교회도, 은총도, 자연을 초월하는 어떤 질서도 존재할 곳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신앙의 모든 체계가 뿌리째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동정 마리아께서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모든 흠에서 면제되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한다면, 원죄,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회복, 복음, 교회, 그리고 고통의 법까지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할 때, 이성주의(Rationalism)와 유물론(Materialism)은 무엇이든 뿌리째 뽑혀 나가고, 진리를 지키고 보호하는 그리스도교 지혜의 영예는 남게 됩니다.

또한, 오늘날 신앙의 적들에게 공통된 악습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신앙을 더 쉽게 지워버리기 위해 교회의 권위, 더 나아가 인간들 사이의 어떤 권위에도 존경과 복종을 거부하고 그것을 타도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정부주의(Anarchism)가 시작됩니다. 자연적 질서와 초자연적 질서 모두에 이보다 더 해롭고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공공 질서와 그리스도교 전체에 치명적인 이 전염병 또한 하느님 어머니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가 파괴합니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교회에 의지뿐만 아니라 지성까지 복종시켜야 할 권한을 부여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성의 복종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어머니를 이렇게 찬양합니다. "마리아님, 당신은 온전히 아름다우시고 원죄의 흠이 없으십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미사 화답송) 그리하여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온 세상의 모든 이단을 홀로 쳐부수셨다"는 교회의 찬사가 정당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됩니다.

사도의 말씀대로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체"(히브 11, 1)라면, 동정녀의 원죄 없는 잉태는 믿음을 굳건하게 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인정할 것입니다. 동정녀께서 원죄의 흠이 없으셨던 것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시기 위함이었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선에 대한 희망을 되찾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더라도, 원죄 없으신 동정녀를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당신의 것이라고 특별히 말씀하신 그 계명,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계명을 거룩하게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본 "큰 표징"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묵시 12, 1) 이 여인이 우리의 머리이신 분을 온전하게 낳으신 동정 마리아를 의미한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사도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묵시 12, 2)

요한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이미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면서도, 어떤 신비로운 해산의 고통을 겪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무슨 해산입니까? 그것은 분명 아직 유배지에 붙들려 있어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과 영원한 행복을 향해 태어나야 할 우리를 낳으시는 고통입니다.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은 천상의 자리에서 선택된 이들의 수가 차기를 바라며 끊임없는 기도로 깨어 계시는 동정녀의 열정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모든 이가, 특히 하느님 어머니의 원죄 없는 잉태를 더욱 성대하게 기념하는 이 기회를 통해, 이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세우신 거룩한 종교가 얼마나 맹렬하고 잔혹하게 공격받고 있습니까! 그 때문에 많은 이가 퍼져가는 오류에 이끌려 신앙을 저버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코린 10, 12)

동시에 모두가 하느님의 어머니를 중재자로 삼아, 진리에서 벗어난 이들이 회개하도록 하느님께 겸손한 기도와 간구를 바칩시다. 우리는 사랑으로 바치고 거룩하신 동정녀의 탄원으로 뒷받침되는 기도가 헛된 적이 없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앞으로도 공격받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도 일어나야,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1코린 11, 19)

그러나 동정녀께서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곁에 계시기를 멈추지 않으실 것이며, 잉태되시는 순간부터 싸워오신 그 싸움을 계속하시어 우리가 날마다 이렇게 되뇌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그분께서 옛 뱀의 머리를 짓부수셨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제2저녁기도 마니피캇)

하늘의 은총이 평소보다 더 풍성하게 내려, 우리가 복 되신 동정녀를 본받으며 올 한 해 동안 그분께 더 큰 영광을 드리도록 돕고,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는' 우리의 목적을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도록, 저는 선임 교황들의 전례를 따라 가톨릭 세계에 희년(Jubilee)과 같은 특별 대사(Extraordinary Indulgence)를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와 복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권위를 믿고, 주님께서 비록 자격 없는 저에게 맡기신 맺고 푸는 권한으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로마에 거주하거나 로마를 방문하는 모든 남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사순 제1주일인 2월 21일부터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인 6월 2일까지(이날 포함), 4대 총대주교 대성전 중 한 곳을 세 번 방문하고, 그곳에서 가톨릭교회와 사도좌의 자유와 현양, 이단의 근절과 모든 오류에 빠진 이들의 회개, 그리스도교 통치자들의 화합과 모든 신자 백성의 평화와 일치를 위하여, 그리고 저의 지향에 따라 하느님께 경건하게 기도를 바치며; 위 기간 내에 사순시기 관면일에 포함되지 않는 날에 한 번 단식(육식을 금하는 음식으로)하고; 죄를 고해하고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영한 이들에게,

로마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신자들에게: 주교좌 성당이나, 주교좌 성당이 없는 경우 본당 성당, 또는 본당 성당이 없는 경우 주요 성당을, 위에서 정한 기간 내에, 또는 교구장님들의 판단에 따라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지정된(단 12월 8일 이전까지) 3개월 동안(연속되지 않아도 됨) 세 번 방문하고, 위에서 언급한 다른 신심 행위들을 경건하게 이행한 이들에게,

전대사(Plenary Indulgence)를 수여하고 베풉니다. 또한 이 대사는 한 번만 받을 수 있으며, 사랑으로 하느님과 결합한 상태에서 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에게 대리 기도로(per modum suffragii) 양도할 수 있음을 허락합니다.

또한 여행 중인 이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위에 명시된 행위들을 이행하면 같은 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교구장에게 적법하게 승인받은 고해 사제들에게는, 제가 명한 위의 행위들을 수도자들과 그 행위를 이행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다른 신심 행위로 변경해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며, 아직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는 영성체 조건을 관면해 줄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합니다.

또한 평신도나 성직자, 재속이나 수도회(특별히 명시해야 하는 수도회 포함)의 모든 신자에게, 이 목적을 위해 적법하게 승인받은 재속 또는 수도 사제 중 누구라도 고해 사제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과 허가를 부여합니다(수녀, 수련자, 봉쇄 구역 내의 여성들도 수녀들의 고해 사제로 승인받은 사제라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고해 사제들은 이번 희년을 얻고 필요한 행위를 이행하려는 마음으로 고해하러 오는 이들을, 이번에 한하여 내적 법정(foro conscientiae)에서만, 법에 의해 또는 사람에 의해 부과된 파문, 정직, 기타 교회법적 선고와 제재로부터 사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구장이나 교황 또는 사도좌에 유보된 경우, 심지어 교황과 사도좌에 특별한 방식으로 유보된 경우도 포함되며, 또한 교구장이나 교황 및 사도좌에 유보된 모든 죄와 과오로부터 사면할 수 있습니다. 단, 구원에 유익한 보속(penance)과 법적으로 부과되어야 할 다른 것들을 먼저 부과해야 하며, 이단과 관련된 경우에는 법에 따라 먼저 오류를 맹세코 끊어버리고 철회해야 합니다.

또한 서원(순결 서원, 수도 서원, 제3자가 받아들인 의무 서원은 제외)을 다른 경건하고 유익한 행위로 변경해 줄 수 있으며, 성품을 받은 참회자(수도자 포함)가 제재 위반으로 인해 성품 행사나 상급 서품에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는 은밀한 무자격(occult irregularity) 상태에 있는 경우 이를 관면해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이 서한을 통해 범죄나 결함으로 인한 공개적이거나 은밀한 다른 무자격, 또는 다른 무능력이나 부적격에 대해 관면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또한 복된 기억의 베네딕토 14세께서 반포하신 헌장 『고해성사(Sacramentum Poenitentiae)』와 그에 따른 선언들을 폐지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끝으로, 교황이나 사도좌, 또는 고위 성직자나 교회 재판관에 의해 지명되어 파문, 정직, 금지(interdict)되었거나 기타 선고와 제재에 해당한다고 선언되었거나 공개적으로 고발된 이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보상(satisfaction)하고 필요한 경우 당사자와 화해하지 않는 한, 이 서한이 아무런 효력이 없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덧붙이자면, 이 희년 기간에도 저나 저의 선임자들께서 수여하신 전대사를 포함한 다른 대사들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은 그대로 유지됨을 원하고 허락합니다.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저는 원죄 없으신 동정녀의 전구로 제가 수여한 이 특별 희년의 은총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참하게 떨어져 나간 수많은 이가 그분께 돌아오고, 그리스도인 백성 안에 덕행에 대한 사랑과 신심의 열정이 다시 꽃피어나리라는 큰 희망을 거듭 밝히며 글을 맺습니다.

50년 전, 저의 선임자 비오 교황님께서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복 되신 동정녀가 원죄 없이 잉태되셨음을 가톨릭 신앙으로 믿어야 한다고 선포하셨을 때, 앞서 말했듯이 이 땅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풍성한 하늘의 은총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에 대한 희망이 커지면서, 어디서나 옛 신앙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앞으로 더 큰 은총을 기대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참으로 우리는 예언자의 말씀으로 마땅히 한탄할 수 있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자비도 없고 하느님을 아는 예지도 없다. 저주와 거짓, 살인과 도둑질, 간음이 난무한다." (호세 4, 1-2)

그러나 죄악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자비로우신 동정녀께서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이루는 중재자로서 무지개처럼 우리 눈앞에 계십니다.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창세 9, 13) 폭풍우가 몰아치고 하늘이 칠흑 같은 어둠에 덮일지라도, 아무도 마음 흔들리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보시고 진노를 푸시며 용서하실 것입니다.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내가 그것을 보고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 (창세 9, 16) "다시는 물이 모든 살덩어리를 파멸시키는 홍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창세 9, 15)

우리가 마리아를 진심으로 신뢰한다면, 특히 그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더욱 열렬히 기념하는 지금, "처녀의 발로 뱀의 머리를 짓부수신"(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성무일도) 그분이 지극히 강력한 동정녀이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이러한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백성에게 내리기를 기원하며, 주님 안에서 사도적 축복을 애정을 담아 드립니다.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재위 1년, 1904년 2월 2일

교황 비오 1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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