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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레오 14세, 삼종 기도, 2026년 1월 18일 주일

  교황 레오 14세 삼종 기도 성 베드로 광장 2026년 1월 18일 주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된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1,29-34 참조)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자 ‘메시아’로 알아본 세례자 요한에 대해 전해 줍니다. 요한은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29절) 라고 선포하며,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이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31절) 라고 덧붙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아보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의 신성과 사명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업이 끝나자,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그분은 나보다 앞서 계신 분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이다”(30절) 라는 말과 함께 겸손히 물러납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은 군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며,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이 그를 두려워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습니다(요한 1,19 참조). 그는 이러한 명성을 충분히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성공과 인기를 향한 유혹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인정하며 그분의 위대하심을 위해 자리를 내어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해 파견된 이 임을 알고 있었기에(마르 1,3; 이사 40,3 참조), 주님께서 오시자 기쁨과 겸손 으로 그분의 현존을 증언하며 무대 뒤로 퇴장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요한의 이 증언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현대 사회는 타인의 인정과 합의 , 그리고 겉 으로 드러나는 모습 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곤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기분을 좌우하며 고통과 분열을 낳고, 허무하고도 우리를 구속하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러한 ‘행복의 대용품’ 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위대함은 성공과 명성이라는 찰나의 환상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사랑받고 선택받은 존재라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이 바로 이것입...

교황 레오 14세, 크랑몬타나(스위스) 사고 희생자 가족들과의 만남 2026년 1월 15일 목요일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연설 크랑몬타나(스위스) 사고 희생자 가족들과의 만남 2026년 1월 15일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여러분을 마주하니 제 마음에도 깊은 울림이 전해집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 이 알현을 청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지체 없이 대답했습니다. "기꺼이 시간을 내겠습니다." 극심한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우리 신앙의 시련이자 우리가 믿는 바를 증명하는 이 순간을 여러분과 꼭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통 앞에서 자주 묻곤 합니다. "주님, 왜입니까?" 어떤 분은 장례 미사 중에 보았던 한 장면을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제는 강론 대신,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 질문을 품고 하느님과 대화하듯 물었습니다. "주님, 대체 왜입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지금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분들이 비극적인 참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혹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참혹한 화재로 몸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기쁨과 축복이 가득해야 할 날,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닥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비극적인 사건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느끼는 참담함에 걸맞은 위로, 그저 입술에서만 맴도는 허무하고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희망을 되살려줄 위안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오늘 여러분의 처지와 가장 닮아 계신 십자가 위의 하느님 아드님께서, 버림받음의 심연 속에서 아버지를 향해 외치셨던 그 한마디만이 유일한 답이 될 것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태 27, 46 참조) 아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아버지의 응답은...

교황 레오 14세, 1.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친구처럼 말씀하신다. (2026년 1월 14일 수요일)

  교황 레오 14세 일반 알현 바오로 6세 홀 2026년 1월 14일 수요일 교리 교육: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1.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친구처럼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되새기는 교리 교육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인 「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을 깊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 문헌은 공의회가 남긴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문서 중 하나입니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 15 참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핵심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시어, 이제부터 우리를 ‘우정의 관계’ 로 초대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계약의 유일한 조건은 바로 사랑 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요한 복음의 이 대목을 해설하며, 오직 은총 을 통해서만 우리가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친구 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우정은 대등한 이들 사이에서 생겨나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대등하게 만든다” 라는 옛 격언이 있습니다. 본래 우리는 하느님과 대등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 안에서 우리를 당신과 닮은 존재로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에는 처음에 일정한 거리감 이 존재합니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그 관계가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자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심으로써 이 계약은 최종 목적지를 향해 활짝 열립니다. 예수님 안에서...

교황 레오 14세 삼종기도, 주님 세례 축일 (2026년 1월 11일 주일)

  주님 세례 축일 교황 레오 14세 삼종기도 성 베드로 광장 2026년 1월 11일 주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복된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은 연중 시기의 시작을 알립니다. 전례주년의 이 시기는 우리가 다 함께 주님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며, 이웃을 향한 그분의 사랑의 몸짓 을 본받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사실 이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생명의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는 성사, 곧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세례 성사 를 확인하고 새롭게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 효과적인 은총의 표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마태 3, 16 참조) 을 보십니다. 동시에 열린 하늘에서는 “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17절) 이라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로써 성삼위의 신비 가 역사 속에 온전히 드러납니다. 성자께서 요르단강 물속으로 내려가신 것처럼, 성령께서 성자 위에 내려오시고, 그분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힘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과 고통, 그리고 간절한 기다림을 외면한 채 멀리서 세상을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닙 니다! 그분은 강생하신 말씀(Verbo)의 지혜와 함께 우리 가운데 오시어, 인류 전체를 향한 놀라운 사랑의 계획 안 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렇기에 세례자 요한은 경이로움에 가득 차 예수님께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께서 저에게 오십니까?”(14절) 라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드러내시고자 모든 죄인과 똑같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된 외아드님께서는 군림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으며,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 그분은 구원자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죄...

교황 레오 14세, 주님 세례 축일 (2026년 1월 11일 주일)

주님 세례 축일 성녀 미사 거행 및 유아 세례 중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강론 시스티나 성당 | 2026년 1월 11일 주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역사 속에 들어오실 때, 그분께서는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우리 각자의 삶에 다가오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랑 가득한 눈 으로 우리의 시선 을 찾으시며, 구원의 말씀 을 계시하시어 우리와 대화 를 나누십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모든 이를 위하여 놀라운 가능성을 실현하셨으며, 이는 예언자들조차 예상치 못한 새롭고 희망찬 시대를 열어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를 즉시 알아차리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께서 저에게 오십니까?” (마태 3, 14 참조).   어둠 속의 빛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분께서는 죄인들 가운데 계신 거룩한 분이시며, 우리와 거리를 두지 않고 우리 가운데 머물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모든 것을 온전히 짊어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대답하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15절 참조). 이 '의로움' 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세례 를 통해 우리의 의화(義化)를 이루시는 하느님의 공정함 입니다. 성부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자비 안에서, 모든 이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분께서 이 예식을 죽음과 부활, 용서와 친교의 새로운 표징 으로 승화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 거행하는 성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아이들을 사랑하시기에, 이 아이들은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며 우리의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품에 안고 있는 자녀들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 로 변화됩니다. 부모인 여러분에게서 육신을 입어 생명을 받았듯이, 이제 아이들은...

교황 레오 14세, 로마 교구 청년들과의 만남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로마 교구 청년들과의 만남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연설 바오로 6세 홀 |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만남 전 청년들에게 전하는 성하의 인사 (바오로 6세 홀로 이동하기 전, 페트리아노에 모인 청년들에게) 여기서 먼저 인사를 나눕니다. 여러분은 화면을 통해 이 만남을 함께하시게 되겠네요. 저는 이제 바오로 6세 홀로 이동합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시지요? 화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직접 만나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만남 안에서 우리는 참된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토록 기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분들도 보이는데, 모두 환영합니다(Bienvenidos). 자,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함께 연대할 때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며, 이 우정과 형제애의 정신을 함께 살아갑시다.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종종 고통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친구와 가족, 그리고 우리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이들과 함께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이 용기를 간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늘 믿음을 주시어, 여러분이 "네, 주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걷겠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십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성하의 연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환영합니다! 광장과 성 오피치오 외곽의 추위 속에서도 화면으로 이 만남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분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삶의 수많은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이 갈망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늘 저녁 이곳에 오기 직전, 저의 젊은 조카에게서 메시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삼촌, 세상의 그 많은 문제와 걱정거리를 어떻게 감당하세요?...

베네딕토 16세 교황 일반 알현,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2007년 10월 10일(수)

  베네딕토 16세 교황 일반 알현 성 베드로 광장 | 2007년 10월 10일(수)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는 4세기의 위대한 주교이자 서방 교회의 거목이신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오 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당시 아리아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그저 뛰어난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 했습니다. 이에 맞서 힐라리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곧 그분께서 성부와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영원으로부터 성부께 나신 하느님이시라는 신앙을 수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힐라리오의 생애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많지 않습니다. 고대 사료에 따르면 그는 310년경 푸아티에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수준 높은 문학 교육을 받았으며, 이는 그의 저술 속에 잘 녹아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고백하듯, 진리를 찾는 여정 속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깨달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 사람이 되시고 죽으신 하느님을 점진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345년경 세례를 받은 그는 353~354년경 고향 푸아티에의 주교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후 힐라리오는 첫 저서인 『마태오 복음 주해』 를 썼는데, 이는 라틴어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마태오 복음 주석서입니다. 356년 힐라리오는 프랑스 남부 베지에 시노드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 회의를 ‘거짓 사도들의 시노드’라 불렀는데, 당시 회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아니즘 성향의 주교들에 의해 장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거짓 사도들’ 은 콘스탄티우스 황제를 움직여 힐라리오 주교에게 유배령을 내렸고, 그는 356년 여름 갈리아를 떠나야 했습니다. 오늘날 튀르키예 지역인 프리기아로 유배된 힐라리오는 아리아니즘이 팽배한 환경 속에서도 사목자로서의 열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니케아 공의회가 정립한 올바른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의 일치를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널리 알려진 교의학 ...

교황 레오 14세 성하, 임시 추기경 회의 폐회 연설 (2026년 1월 8일 목요일)

  임시 추기경 회의 폐회 연설 교황 레오 14세 성하 시노드 홀 2026년 1월 8일 목요일 우리 각자가 추기경으로 서임될 때, 교황님께서는 “로마 시와 먼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와 그분 복음의 용기 있는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추기경 서임 예식 참조). 이 사명은 참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이번 추기경 회의는 교회의 사명을 친교 안에서 함께 드러내는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하루 반 동안 성령께서는 당신의 다채로운 은사를 풍성하고도 분명하게 부어주셨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저의 직무를 돕기 위해 이곳에 와주시고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연로하신 가운데서도 기꺼이 발걸음을 해주신 추기경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의 증언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아울러 여러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세계 각지의 추기경님들께도 특별한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으며, 여러분을 가까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만남은 우리가 콘클라베에서 겪었던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의 후계자 선출 전부터 이미 서로를 더 잘 알고, 기여와 지지를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5월 9일에 첫 경험을 했고, 지난 이틀 동안은 서로 만나고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소박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분 모두와, 그리고 수많은 발언을 통해 깊은 친교와 조화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시노달리성을 조직적인 기술이 아니라, 경청과 관계 안에서 성장하기 위한 도구로서 체험했습니다. 분명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심화시켜야 합니다. 연설 끝부분에 우리가 어떻게 이 여정을 지속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에 앞서 이번 며칠 동안 제기된 몇 가지 핵심 사항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아마 마지막 세션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단어들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사명의 중심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함에...

희년 협력 기관 대표단에게 하신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연설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희년 협력 기관 대표단에게 하신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연설 바오로 6세 홀 2026년 1월 10일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피지켈라 대주교의 인사에 화답]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환영합니다! “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선이 존재하는지요!” 저는 피지켈라 대주교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선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님과 이 자리에 함께하신 당국자 여러분, 그리고 나흘 전 막을 내린 ‘희망의 희년’이 원만히 거행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기여해 주신 민간 및 교회 기관 대표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특히 이탈리아 정부와 정부 특사, 로마 시(특별히 시장님과 그 조직 부서들), 라치오 주 정부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아울러 치안 부대와 그 업무를 조율한 지방 행정부, 민방위대, 수많은 자원봉사 단체, 그리고 ‘희년 2000’ 사무국에도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복음화부(세계 복음화 기초 문제 부서)와 협력해 주신 다른 부처들, 바티칸 경찰대,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 바티칸 시국 거처부, 교황궁 내무원, 그리고 사목·문화·홍보·일치·기술·경제 등 각 위원회와 고해 사제들, 각 교구 및 주교회의 대표들, 개별 행사마다 참여해 주신 각 분야 전문가들, 그리고 모든 연령과 지역을 아우르는 5천 명의 ‘희년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각별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희년을 준비하던 고된 단계부터 희년의 전 과정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이 보여주신 노고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때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그러나 언제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다각적인 기여를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3천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절도와 정적, 질서와 조직력을 갖춘 가운데 희년의 여정을 완수하고 전례와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로마는 모두를 따뜻하게 환영하는 집이요, 개방적이고 유쾌하...

프란치스코 가족 협의회 총봉사자들에게 보내는 교황 레오 14세의 서한 (2026년 1월 7일 교황 레오 14세)

  프란치스코 가족 협의회 총봉사자들에게 보내는 교황 레오 14세의 서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서거 제8주년 개막을 기념하며 프란치스코 가족 협의회 총봉사자들에게 "나의 누이인 죽음!" 1226년 10월 3일 포르치운콜라에서, 마침내 평화를 얻은 사람으로서 죽음을 맞이하며 성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시시의 가난한 이(Poverello)가 당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구원 말씀을 강렬한 필치로 새겨 넣고 세상을 떠난 지 여덟 세기가 흘렀습니다. 그의 선종(Transitus) 800주년이라는 뜻깊은 기념일을 맞이하여, 본인은 영적으로 모든 프란치스코 가족 및 기념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와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그의 평화의 메시지가 오늘날의 교회와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기를 희망합니다. 그는 복음적 생활을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은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인사를 하도록 계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1]. 이 핵심적인 말씀으로 그는 자신의 삶에 복음이 가져다준 내면의 놀라움을 형제들과 모든 신자에게 전달합니다.  곧 평화는 하느님이 주시는 모든 선의 총화이며, 위로부터 내려오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만으로 평화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착각이겠습니까! 그러나 평화는 매일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 능동적인 선물이기도 합니다 [2]. 이 인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파스카 저녁에 두려움에 떨며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건네신 인사와 같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20, 19 참조) [3]. 이것은 단순한 예절의 문구가 아니라, 죽음에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확실한 선포입니다. 성탄 밤 천사들의 목소리인 "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 14 참조) [4]와 같이, 사부 성 프란치스코가 선포하는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레오 14세 교황, 특별 추기경회의 시노드 홀 (2026년 1월 7일 수요일)

  레오 14세 교황 특별 추기경회의 시노드 홀 2026년 1월 7일 수요일 교황 성하 연설 특별 추기경회의 제1세션 종료 후 교황 성하의 즉석 연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을 기쁘게 맞이하며 환영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간구한 성령께서 이 이틀간의 성찰과 대화의 시간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 바로 다음 날 우리가 추기경회의로 모인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 신비가 주는 영감으로 우리 작업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전례 안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감동적인 부르심이 울려 퍼졌습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가리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이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채를 향하여 오리라”(이사 60,1-3 참조). 이 말씀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성교회 헌장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제1항 전체를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빛이시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 모인 이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며(마르 16,15 참조), 교회의 얼굴에 비치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모든 사람을 밝게 비추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기에, 전임 공의회들의 주제를 이어받아 교회의 본질과 보편적 사명을 신자들과 온 세상에 더욱 분명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현대의 세상 조건은 교회의 이러한 임무를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으니, 오늘날 온갖 사회적 기술적 문화적 유대로 더욱 긴밀하게 결합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교회 헌장 Lumen Gentium , 1항). 우리는 성령께서 수 세기의 간격을 두고 예언자와 공의회 교부들에게 동일한 비전을 불어넣어 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도성—...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교황청 주재 외교단 신년 연설 (2026년 1월 9일 금요일)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교황청 주재 외교단 신년 연설 사도 궁전 ‘강복의 창’ 홀 2026년 1월 9일 금요일 엑셀렌차(대사님들), 존경하는 외교단 여러분, 신사 숙녀 여러분, 먼저 외교단 단장이신 조지 풀리데스 대사님께서 여러분을 대표하여 전해주신 정중하고 예우에 찬 말씀에 감사드리며, 새해를 시작하는 이 인사의 자리에 여러분 모두를 기쁘게 환영합니다. 교황청 주재 외교단의 전통적인 행사인 이 만남은, 불과 몇 달 전 그리스도의 양 떼를 돌보도록 부름받은 저에게는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을 맞이하게 되어 매우 기쁘며, 특히 올해 카자흐스탄, 부룬디, 벨라루스의 상주 사절단장들이 새롭게 참석하여 자리가 더욱 풍성해진 것에 감사드립니다. 해당 국가들이 교황청에 외교 사절단을 개설한 것은 양측의 훌륭하고 결실 있는 관계를 보여주는 가시적인 징표입니다. 대사님들을 통해 여러분의 국가에 축복의 인사를 전하며,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어 고통받는 우리 시대에 대한 저의 견해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한 해는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특히 교회가 집중적인 희년을 보냈고, 저의 존경하는 전임자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 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온 세상이 장례 미사 날 그분의 관 주위에 모였으며, 깊은 목자적 사랑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이끄셨던 아버지의 부재를 절감했습니다. 며칠 전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24년 성탄 밤에 여셨던 성 베드로 대성전의 마지막 성문을 닫았습니다. 거룩한 해 동안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희년 순례를 위해 로마를 찾았습니다. 각자는 자신의 삶과 질문, 기쁨, 그리고 상처와 고통을 짊어지고 성문을 넘어왔습니다. 성문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천상 의사이신 그분께서는 우리가 갓 경축한 주님 성탄 대축일의 신비처럼, 우리를 당신의 신성한 생명에 참여시키기 위해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저는 이 여정을 통해 많은 이가 주 예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거나 재발견하고, 삶의 도전에 맞설 위로와 쇄...

레오 14세 교황 , 임시 추기경 회의 미사 강론 (2026년 1월 8일 목요일)

  임시 추기경 회의 미사 강론 레오 14세 교황 성하 성 베드로 대성전 2026년 1월 8일 목요일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4, 7). 이번 임시 추기경 회의를 거행하며 전례를 통해 마주하는 이 권고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지금 이 시간은 우리가 교회를 향한 봉사 안에서 얼마나 깊이 하나 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추기경 회의를 뜻하는 ‘콘치스토리움’( Consistorium )은 ‘멈추어 서다’라는 의미의 동사 ‘콘치스테레’( consistere )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이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섰습니다’. 각자의 분주한 활동을 잠시 멈추고 중요한 일정들마저 뒤로한 채,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선익을 위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함께 식별하고자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속도전의 사회 안에서 이러한 멈춤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고 예언적인 몸짓입니다. 이는 삶의 모든 여정에서 기도와 경청, 그리고 성찰을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그렇게 멈추어 설 때 비로소 우리는 목표를 향한 시선을 선명하게 고정할 수 있으며, 사도 바오로가 경고한 것처럼 “목표 없이 달리는” 일이나 “허공을 치는” 헛된 수고를 하지 않고(1코린 9, 26 참조) 모든 노력과 자원을 바른 방향으로 쏟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개인이나 집단의 ‘의제’를 관철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계획과 영감을 “하늘이 땅 위에 높이 있듯이”(이사 55, 9)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며 오직 주님께로부터만 오는 식별의 심판대 에 겸손히 맡기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성찬례 안에서 우리의 모든 소망과 생각을 우리 삶의 봉헌과 함께 제단 위에 정성껏 올려둡시다. 이를 그리스도의 희생과 결합하여 성부께 봉헌합시다. 그리하여 은총을 통해 정화되고 빛나며, 하나로 녹아들어 단 ...

레오 14세 교황, 일반 알현, 교리 교육: 문헌을 통해 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도입 교리 교육(2026년 1월 7일 수요일)

  레오 14세 교황 일반 알현 바오로 6세 홀 2026년 1월 7일 수요일 교리 교육: 문헌을 통해 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도입 교리 교육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예수님 삶의 신비들을 깊이 묵상했던 희년의 여정을 뒤로하고, 이제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를 주제로 한 새로운 교리 교육을 시작하려 합니다. 공의회 문헌들을 다시 읽어 나갈 이번 여정은 이 교회적 사건이 지닌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께서는 2000년 대희년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공의회가 20세기 교회가 입은 커다란 은총이라고 지적해야 할 의무를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느낍니다”(사도적 서한 「새 천년기」 Novo millennio ineunte , 57호). 우리는 2025년에 니케아 공의회 기념해와 더불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60주년을 함께 기억했습니다. 비록 공의회로부터 그리 긴 세월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당시를 이끌었던 주교님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믿음의 선조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공의회의 예언적 가르침을 계승하고 그 통찰을 실현할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하는 지금, 공의회를 다시금 가까이서 마주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막연한 소문이나 외부의 해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문헌을 직접 다시 읽고 그 핵심 내용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의회 문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가 나아갈 길을 비추는 북극성 같은 교도권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께서 가르치셨듯, “세월이 흘러도 공의회 문헌들의 시의적절함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그 가르침은 교회의 새로운 요구와 오늘날의 세계화된 사회 안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선종 직후 추기경단에게 보낸 첫 메시지, 2005년 4월 20일). 성 요한 23세 교황께서 1962년 10월 11일 공의회를 개막하셨을 때,...

교황 레오 14세, 주님 공현 대축일 삼종 기도( 2026년 1월 6일 화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삼종 기도 교황 레오 14세 |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 | 2026년 1월 6일 화요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동안 우리는 여러 축일을 지내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 은 그 이름 자체로 어려운 시기에도 어떻게 기쁨이 가능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공현(Epifania)' 이라는 말은 '드러남' 을 뜻합니다. 우리의 기쁨은 더 이상 숨겨져 있지 않은 신비에서 태어납니다. 하느님의 생명이 밝히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 번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으나, 이제 예수님 안에서 결정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수많은 환난 중에서도 희망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구원하신다." 이외에 그분께 다른 의도는 없으며, 다른 이름도 없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구원하는 것만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느님의 공현입니다. 베들레헴의 아기 앞에서 박사들처럼 무릎을 꿇는 것은, 우리 역시 하느님의 영광이 빛나는 참된 인성을 발견했음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생명, 곧 살아 있는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마태 6,10)라고 기도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성한 생명은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그 생명은 두려움을 녹이고 우리가 평화 안에서 서로 만나게 하는 해방의 역동성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능성이자 초대입니다. 친교는 강요될 수 없지만, 이보다 더 바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복음 이야기와 우리가 만든 구유 안에서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는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마태 2,11 참조). 아기에게 실용적인 물건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희년의 끝자락에 선 우리에게 깊은...

교황 레오 14세, 주님 공현 대축일 – 성문 폐쇄 예식 및 미사 강론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 성문 폐쇄 예식 및 미사 강론 교황 레오 14세 | 성 베드로 대성전 | 2026년 1월 6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마태 2,1-12 참조)은 별을 다시 본 박사들이 느낀 "가장 큰 기쁨"(10절 참조) 과, 그들의 탐구 앞에서 헤로데와 온 예루살렘이 겪은 "당황함"(3절 참조) 을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드러나심(공현) 앞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갈등을 숨기지 않습니다. 기쁨과 당황, 저항과 순종, 두려움과 갈망이 그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공현을 경축하며, 주님의 현존 앞에서는 그 무엇도 예전과 같을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바로 희망의 시작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면 그 무엇도 정체되어 있을 수 없습니다. "태양 아래 새것이 없다"(코헬 1,9)며 되뇌는 이들의 무력한 안일함은 끝이 납니다. 이제 예언자가 선포한 대로 현재와 미래를 결정지을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 60,1). 수많은 '새로운 시작'의 증인이었던 예루살렘 도성이 정작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도성 안에서 성경을 연구하며 모든 답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이들일수록, 질문을 던지고 갈망을 품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오히려 도성은 희망에 이끌려 먼 곳에서 찾아온 이들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마땅히 큰 기쁨이 되어야 할 소식에서 위협을 느낍니다. 이러한 반응은 오늘날 교회인 우리에게도 중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닫힌 이 대성전의 성문(Porta Santa) 은, 문이 항상 열려 있는 도성인 '새 예루살렘'(묵시 21,25 참조)을 향해 걷는 수많은 '희망의 순례자' 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으며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습니까? 희년이 끝나는 지금, 현대인들이 보여주는 영적 탐구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교황 레오 14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2026년 1월 1일 목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미사   교황 레오 14세 강론   성 베드로 대성전 2026년 1월 1일 목요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자 새해의 시작을 맞이하며, 전례는 우리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축복의 기도를 들려줍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민수 6, 24-26 참조) 이 축복은 민수기에서 나지르인들의 축성에 관한 지침 뒤에 이어지며,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 안에서 선물이 지닌 거룩하고 풍요로운 차원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창조주께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봉헌하고, 그분께서는 세상의 시초에 그러하셨던 것처럼 당신의 인자한 눈길을 인간에게 돌려 응답하십니다. (창세 1, 31 참조) 사실 이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해방된 백성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개입과 그분의 종 모세의 관대한 응답 덕분에 오랜 종살이를 끝내고 다시 태어난 남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어느 정도의 안정을 누렸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았고 지붕이 있었으며 일정한 안정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더 적게 베푸는 폭정에 억압받는 노예가 되는 대가였습니다. (탈출 5, 6-7 참조) 이제 광야에서 과거의 많은 확신은 사라졌지만, 그 대가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자유는 미래를 향해 열린 길, 지혜로운 법이라는 선물, 그리고 더 이상 족쇄와 사슬 없이 살아가고 성장할 땅에 대한 약속, 즉 '새로운 태어남'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이처럼 새해의 시작에 전례는 하느님의 관대한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우리 자유의 응답 덕분에 매일매일이 우리 각자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시작되는 한 해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즉,...

레오 14세 교황,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저녁기도 및 사은 찬미가(TE DEUM) 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저녁기도 및 사은 찬미가(Te Deum) 강론 교황 레오 14세 | 2025년 12월 31일 | 성 베드로 대성당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저녁기도 전례는 참으로 풍요롭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념하는 경이로운 신비뿐만 아니라,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시기적 의미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편과 마니피캇의 후렴들은 동정녀에게서 하느님이 태어나셨다는 역설적인 사건, 곧 마리아의 ‘천주의 모성’을 거듭 강조합니다. 동시에 성탄 팔일 축제를 마무리하는 이 대축일은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이하는 전환점을 감싸 안으며,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1, 8)의 축복을 그 위에 내립니다. 오늘 우리는 희년의 끝자락에서 로마의 심장부인 베드로의 무덤 곁에 모였습니다. 이제 곧 대성당에 울려 퍼질 '사은 찬미가'는 이 성전의 돔 아래를 지나고 이 도시의 거리들을 거쳐 간 모든 이의 마음과 얼굴을 대신하는 거대한 울림이 될 것입니다. 방금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놀라운 요약을 들었습니다. “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 4-5). 그리스도의 신비를 제시하는 이 방식은 인류 역사를 향한 하느님의 거대한 '설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신비로운 계획이지만, 울창한 숲 한가운데 햇빛을 받는 높은 산처럼 명확한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심은 바로 ‘때가 찬 때’입니다. 이 '설계'라는 단어는 에페소서의 찬가에서도 메아리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분 안에서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호의에 따라 미리 세우신 이 계획을 때가 차면 실행하시려고 하셨습니다”(에페 1, 9-10 참조). 형제자매 ...

교황 프란치스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2025년 1월 1일 수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제58차 세계 평화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전 2025년 1월 1일 수요일 주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 마음의 시선을 마리아께 드높일 수 있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어머니이시기에 우리를 당신 아드님과의 관계로 안내하십니다. 우리를 예수님께 돌아가게 하시고,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시며,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끄십니다.  이처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우리를 다시 한번 성탄의 신비 속으로 몰입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희년을 시작하며 성문을 연 우리에게 오늘 이 사실은 다시금 상기됩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신 문이십니다" (성 암브로시오, 서간 42, 4). 사도 바오로는 이 신비를 요약하며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갈라 4, 4 참조)고 단언합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이 말씀은 오늘 우리 마음속에 울려 퍼지며,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육화하셨고 육신의 연약함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나셨다. 이 표현은 무엇보다 우리를 성탄으로 인도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분이 여인에게서 태어나셨음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하느님께서 인간의 태중을 통해 진정으로 사람이 되셨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을 매혹하고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조차 유혹할 수 있는 한 가지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막연한 종교적 관념이나 일시적인 좋은 감정에 연결된 '추상적인' 하느님을 상상하거나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구체적이시고 인간적이십니다. 그분은 여인에게서 태어나 얼굴과 이름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를 당신과의 관계로 부르십니다.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